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독일의 발걸음이 예사롭지 않다. 한편에서는 아직 상용화가 까다로운 미래 기술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몰리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전통적인 에너지 인프라 기업이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며 돈방석에 앉고 있다. 현재 독일 에너지 산업의 단면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두 가지 씬(scene)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행보는 다름 아닌 레이저 핵융합이다. 다름슈타트 공과대학(TU Darmstadt)에서 2021년 스핀오프한 스타트업 ‘포커스드 에너지(Focused Energy)’는 최근 펀딩 라운드에서 무려 2억 4천만 달러(약 2억 6백만 유로)를 끌어모았다. RWE 같은 굵직한 에너지 기업은 물론이고 독일 연방도약혁신청(SPRIND), 헤센주 투자관리공사, 미국 프라임 무버스 랩 등 내로라하는 기관들이 앞다퉈 지갑을 열었다. 스스로를 유럽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핵융합 회사라고 부를 만한 규모다.
이들의 목표는 꽤나 야심 차다. 과거 원전이 있던 비블리스(Biblis) 지역에 세계 최초의 레이저 핵융합 발전소를 짓겠다는 것이다. 원자핵을 쪼개는 대신 융합시키는, 즉 태양에서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지구상에 구현하는 기술이다. 중수소와 삼중수소에 레이저를 쏴서 발생하는 막대한 에너지로 증기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든다는 게 포커스드 에너지 측의 설명이다. 2035년이면 투입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알짜배기 발전소가 가동될 것이란 희망 섞인 관측도 내놓았다. 카베 만수리 경제장관과 보리스 라인 헤센주 총리 등 정치권은 이번 투자가 지역의 연구 경쟁력을 입증한 쾌거라며 한껏 추켜세우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엔 차가운 시선도 존재한다. 환경단체 BUND의 물리학자 베르너 노이만은 이를 두고 “비싸기만 한 방사능 몽상”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탄소 배출이 없고 방사성 폐기물이 적다지만, 자칫 사고라도 나면 방사성 물질 유출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당장 주정부의 기후 자문위원회나 2024년 11월에 나온 외코인스티투트(Öko-Institut)의 연구 결과만 봐도, 실험실 수준의 기술로 실제 전력을 생산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구만리다.
이렇게 2035년의 장밋빛 청사진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인 사이, 당장 오늘 현실 세계에서 역대급 돈을 쓸어 담는 곳이 있다. 지멘스 에너지(Siemens Energy)다. AI와 데이터센터 열풍이 아시아 등지에서 폭발적인 전력망 수요를 불러일으키며, 지멘스 에너지의 2026년 회계연도 2분기 성적표는 그야말로 경이로운 숫자를 찍었다. 신규 수주액만 177억 유로에 달해 시장 컨센서스였던 156억 유로를 가뿐히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매출은 103억 유로, 특별항목을 제외한 영업이익은 11억 6,400만 유로를 기록했고, 주당순이익(EPS)은 0.89유로로 전년 동기 대비 두 배나 뛰었다. 수주 잔고가 1,540억 유로에 육박한다는 것은 당분간 공장 문을 닫을 일 없이 일감이 쏟아진다는 뜻이다. 특히 전력망 기술(Grid Technologies) 부문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18~20%의 마진을 내는 이 사업부 덕에 지멘스 에너지는 올해 전체 매출 성장률 가이던스를 기존 11~13%에서 14~16%로 눈에 띄게 올려 잡았다.
그러나 이 화려한 실적 잔치 속에 시장 애널리스트들의 셈법은 복잡하게 엇갈린다. JP모건이 목표가 225유로에 ‘비중 확대’를 유지하고 베렌버그가 목표가를 200유로로 올려 잡으며 열광하는 반면, 바클레이스의 블라드 세르기예프스키 같은 분석가는 차갑게 식은 머리로 경고장을 날린다. 그의 시각에서는 지금 주가가 이미 “세대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최고의 비즈니스 사이클”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모든 호재를 맹목적으로 선반영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지멘스 에너지의 후행 PER(주가수익비율)은 60배를 훌쩍 넘긴 상태다. 애널리스트들의 공격적인 2027년 예상 순이익을 다 끌어와야 겨우 29.7배로 떨어지는 수준이다. 최근 12개월 동안 주가가 이미 104%나 폭등해 174유로 안팎을 오가는 상황에서, 지금 주식을 담는다는 건 이 엄청난 인프라 투자 사이클이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무서운 맹신에 베팅하는 것과 같다.
장밋빛 전망에 가려진 뼈아픈 리스크도 여전하다. 풍력 자회사인 지멘스 가메사(Siemens Gamesa)는 여전히 구조적인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이번 2분기에도 가메사는 세전 잉여현금흐름에서 마이너스 6억 5,400만 유로를 기록했다. 1년 전(-3억 3,300만 유로)보다 오히려 후퇴하며 턴어라운드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가스 서비스와 전력망 부문이 워낙 잘 나가서 이 밑빠진 독을 메워주고 있을 뿐이다. 결국 다가오는 2026년 8월 5일 3분기 실적 발표가 진검승부처가 될 것이다. 천문학적인 수주 폭발이 일시적 현상이 아닌 지속 가능한 모멘텀인지, 그리고 가메사가 약속했던 실적 개선을 조금이라도 증명할 수 있을지가 독일 에너지 거인의 다음 행보를 결정할 것이다.